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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물따라/산따라 이야기

익숙함? 습관? 아쉬움인지 미련인지

오래된 것에 대한 익숙함

새로운 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불편했던 기존의 것들을 보완하고 대체하고 있다. 어쩌면 불편함을 못 느꼈을 수 있는 것들이 새로운 것을 맞이하면서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찾아 내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분명히 편하고 빠르면서 새로운 기기를 다른 이보다 먼저 쓰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주변의 반응도 은근히 즐기곤 한다.

그러다 문득문득 느끼는 오래된 것에 대한 익숙함이 있다. 예를 들면 전자계산기 같은 거다. 나에게는 꽤 오랜기간동안 책상위를 지켰던 계산기가 있었다.

동생이 쓰던 것을 잠시 가져다 쓰다가 내것이 되어 버린 것이었는데 간단한 계산만을 하는 흔히 일컫는 '쌀집계산기'였다.
윗쪽에 작은 태양광 전지판이 붙어 있어서 건전지를 바꿔 끼울일도 없었고 사칙연산 이외에 다른 계산은 하지 않던 그런 계산기였다. 스마트폰 계산기도 항상 손에 있고, 엑셀에 간단한 표를 만들어서 계산을 하는 방식에 익숙했지만 그 쌀집계산기는 어느날 갑자기 이상해져서 액정의 표시가 하나씩 안되더니 결국엔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려서, 버린지 일년이 지난 지금도 간단한 계산을 하게되는 순간이면 자연스레 계산기가 놓여있던 책상 오른편으로 손이 간다.
계산기가 없다는 인식을 하고는 스마트폰을 켜고 계산기앱이 어디있는지 찾고는 '계산기앱을 첫화면에 놓아야하나?'를 순간 고민해야 한다.

나는 엑셀로 계산하는 것이 익숙하다. 꽤 복잡한 수식이며, 함수를 사용하는데도 익숙하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습관이 배어 있는지 단순 계산이 필요할 때면 오래된 계산기를 습관처럼 찾게 된다. 그런 습관을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문구점이나 마트에 가게 되면 전자계산기를 살까 말까 매번 고민을 한다. 옆에 계신분이 매번 "핸드폰 계산기 쓰면 되는데 무슨 계산기냐"는 핀잔에 들었던 손을 내려 놓기를 반복한다.

가끔은 구글이 무서울 때가 있다. 어느 집단 보다도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구글, 안드로이드를 인수하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중에 가장 많이 인지하거나, 못하거나 많이 쓰는 것이 구글 캘린더인 것 같다.
나의 경우를 봐도 내 개인 일간 일정관리, 팀 업무스케쥴, 부서, 본부 일정을 캘린더를 통해 관리한다. 손흥민의 토트넘 경기 스케쥴도, 주말에 있을 야구경기도 구글 캘린더를 통해 관리한다.
스마트폰에 알람이 울리고, 매일 출근을 해서 크롬을 켜면 한탭은 구글 캘린더가 열린다. 한곳에 입력을 하면 스마트폰에서도 집 PC에서도 회사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편리하지만 가끔은 무섭다. 스마트폰을 바꿨는데 구글 계정하나 설정했을 뿐인데 이전 스마트폰에서 쓰던 앱, 스케쥴, 연락처 등등이 전부 자동으로 설치되어 있는 걸 보고 섬뜩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로 동기화는 일정과 연락처만 사용한다.
이렇듯 편리한 구글 캘린더 등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내 책상위에서 데스크 캘린더가 두개 있다. 하나는 보통 데스크 캘린더로 몇몇 챙겨야할 일정을 따로 적어 놓고 챙겨서 본다. 또 다른 하나는 일주일간 내가 해야할 업무나 일정을 적어 놓는다. 같은 내용이 디지털 캘린더에도 있지만 일정에 대한 것은 나도 모르게 데스크 캘린더를 바라보곤한다.

아마도 꽤 오랜기간 습관처럼 회사 책상 가운데에는 모니터가 그 오른쪽에는 계산기가 왼쪽에는 데스크 캘린더가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익숙한 디지털 기기들이 있음에도 어느 순간에는 습관적으로 찾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마인드맵을 종종 사용하면서도 골머리를 싸메고 아이디어를 쥐어짤때는 펜을 들고 이면지 연습장을 끄적이곤 한다. 따로 정리할 필요없이 자동으로 정리가되고 아이디어도 정리가 되는 디지털 도구를 쓰긴 하지만 어느순간 이전의 습관을 하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물론, 아나로그적인 일상으로 익숙해져 있다가 디지털 기기를 받아들인 나와 디지털기기로 일상을 시작한 이들이 다를 수는 있다.
언젠가 같이 일하는 어느 후배 에게 "왜? 아이디어를 정리를 하지 않고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느냐?"고 질책을 한적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그만의 방식이 이었다는 인식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 에게 익숙한 생활 양식이 있으리라.

생각해 보면 채팅은 모르겠으나 챗봇은 익숙하지 않다. AI 스피커도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포털이나 검색엔진에서 검색하는 방식이 익숙하다. . 한두마디 질문을 하고 몇가지를 실험적으로 해보고는 할게 없었다. 물론, 이 역시도 잘 쓰는 사람이 있으리라.

이외에도 참 많은 것들이 이전의 익숙함에 새로운 기기나 방식의 안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다. 세상은 변하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생활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익숙해진 것들이 효율적이던 효율적이지 않던 간에 나를 둘러싸고 있다. 사실 털어 놓자면 엑셀이 이렇게 편한데 무슨 계산기가 필요하냐며 선배에게 말한 적도 꽤 오래 전에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꽤 나이들어 버린 내게 익숙한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이 아쉬워 그러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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