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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따라 물따라/산따라 이야기

아주 오래전 나를 보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거다.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과의 이야기가 있다.


아이러브스쿨이 나왔던 시기에도 그랬고, 지금은 조금 시들해 졌지만 밴드를 통해서
국민학교(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추억을 되새기곤 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도 국민학교 친구들과는 따로 모임도 하고 지금도 계속 그 만남을 정기적으로 이어오고 있기도 하고

고등학교는 친구들 모임보다는 동문회의 성격으로 더 넓은 커뮤니티로서 무언가 역할을 기대하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중학교는 애매하다.

이전에 친하던 친구들과의 중학동창 모임이 있기는 하지만 왠지 중학교를 매개로한 커뮤니티는 잘 활성화 되지 않았다.

정말 우연이었다.


야구를 같이하는 팀에서 모 대회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야구 선수 출신과의 구별을 위해 중학교, 고등학교시절 생활기록부를 제출하라는 거였다.

생활기록부?

아니 무슨 야구대회 나간다고 생활기록부까지 내야해?

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지방에 있는 학교를 가야하나?

NEIS(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

나이스라고도 하고 네이스라고도 했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이용하면 바로 출력도 가능하다는 거다.

인근 초중고등학교나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에 가면 졸업학교에 팩스로 민원을 신청할 수 있었다.

(2004년 이후 졸업자들은 나이스에서 가능하고 이전 졸업자들은 팩스민원으로만 처리가 가능합니다)



생활기록부를 받았다.

아주 오래전의 나를 본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을까?

"중류가정의 화목하고 단란한 환경이며 부친의 교육열이 높음"


중학교 시절나는 나름 발표를 잘했나 보다. 별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는데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긴 했었다.
생각보다 IQ는 높았고 고무동력기 대회를 매해 나갔었고 나름의 성적도 내고 있었다
누리단?(청소년연맹)에서 매년 캠핑이며 군부대며 참 많이도 다녔었다.

모형비행기 대회에 나간다며 기술실이라는 공간에서 대나무와 습자지 같은 비행기 날개를 만들며 학교생활을 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한번도 학교에 가지 않은 적은 없어 개근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 몸이 아픈적이 없는 걸보면 부모님께 감사해야 할듯하다.
그런데 이건 왠일인가? 최근 이틀간 둘째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한걸 하루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구...

전주 덕진중학교

1학년 2반 23번 / 2학년 1반 18번 / 3학년 5반 22번

'ㅇ'성을 쓰는 나는 항상 20번대 근처의 가나다 순의 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매일 아침에 보는 매일 평가로 유명한 학교였는데
매일 아침에 시험을 보고 반을 바꿔 채점을 하고 같은 학교 선생님이셨던 친척 형님에게가서 한문제에 한대씩 손바닥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매일 영어 단어 한페이지를 쓰라고 내주셨던 영어선생님은 볼펜 여러자루로 쓴 내 연습장을 보시고서도 슬쩍 눈을 감아주시기도 하셨고,

소년체전을 한다고 가장 무도 퍼레이드에 커다란 주황색 바가지 두개를 덧대어 만든 호돌이 탈을 쓰고, 호돌이 역할을 같이 했던 친구는 어느덧 치과의사가 되서 지난 달부터 내 딸아이의 이 교정을 해주고 있다.

뜻하지 않은 일로 보게된 생활기록부(학적부)를 보면서 복사를 하고 팩스로 보내어진 흐릿한 종이 몇장속에 내가 있었다.

친구들과 청소년연맹을 하면서 캠프를 가고, 고무동력기를 만들어서 산너머로 날려보내던 호돌이 탈을 쓰고 전주 시내도로에서 퍼레이드를 하던 내가 있었다.

#성장판 #글쓰기4기#전주#덕진중학교#호돌이